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쿄 대공습 (문단 편집) == 다른 수도 공습 사례와의 비교 == * 영국도 같은 섬나라라서 본토에서 직접적인 전투는 없었지만 전쟁 초기부터 [[영국 본토 항공전]] 이후까지 자국 상공에서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고 여러차례 폭격을 당했다. [[V1(로켓)]], [[V2(로켓)]]와 같은 무기가 유명하지만 본토 항공전 이후에도 독일은 여전히 폭격으로 영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대전 말에도 보복을 위해서 영국에 공습을 시도했다. 심지어 항복하기 직전까지도 제트 폭격기인 [[Ar 234]]를[* Ar 234는 제트기라 속도가 매우 빨랐기에 대공포의 공격이나 영국 공군의 추격을 피할 수 있어서 독일 공군이 애용했다.] 영국 상공에 날려보내기도 했을 정도였다. 독일은 2차대전 참전국 중 가장 심한 폭격을 당했으며, 드레스덴 폭격과 같은 무시무시한 폭격을 당한 끝에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었다. * 유럽 전선에서 최초로 대규모 폭격을 당한 나라는 [[폴란드 제2공화국]]이다. 그 중에서 수도 [[바르샤바]]가 가장 큰 참화를 가장 오랫동안 입었다.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고 [[9월 28일]] [[바르샤바 전투(1939년)|바르샤바 전투]]가 [[폴란드군]]의 [[항복]]으로 끝날 때까지 바르샤바는 매일 폭격을 당했다. 특히 9월 25일에는 독일 지상군의 대규모의 포격과 함께 1,200여 대에 이르는 항공기가 출격하여 바르샤바를 때려부쉈다. 전쟁 전의 바르샤바의 인구는 135만여 명이었는데 바르샤바에서 폴란드군이 항복할 때까지 폴란드군 6천여 명과 시민 2만 5천여 명이 사망했다. 당시의 폭격으로 도시의 12%가 폐허가 되고 50% 이상의 건물이 손상을 입었다. 바르샤바뿐만 아니라 프람폴(Frampol), 비엘룬(Wielun) 등 다른 폴란드 도시들도 독일 공군의 극심한 폭격에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프람폴은 폭격 직후 멀쩡히 남은 것이 도로 2개밖에 없을 정도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0월 6일]] 본토의 마지막 폴란드군이 항복하면서 폴란드 침공이 종료될 때까지 폴란드 민간인 10만여 명이 폭격으로 사망했다. 여기서 끝났어도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지만 [[바르샤바 봉기|6년 후]] 독일군은 비단 공군뿐만[* 사실 바르샤바 봉기 초반에 직접적으로 바르샤바를 폭격한 항공기는 고작 6기에 불과했다했고 그중 대부분은 [[Ju 87]] 등 중소형 급강하폭격기였으나 봉기군이 봉기 초반에 비행장 점령에 실패한데다가 대공 전력도 전무했기에 독일 공군은 고작 6기의 폭격기만으로도 도시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아니라 구경이 600mm인 [[칼 자주박격포]]나 그것도 모자라서 무려 구경만 800mm에 달하는 [[구스타프 열차포]] 같은 대구경 포병 병기들을 끌고와서 바르샤바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고, 거기에 곳곳에 화염방사기를 뿌리고 공병을 파견하여 계획적으로 도시를 파괴해 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